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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의 아름다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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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암 항공 VR
  • 시대
  • 지정번호
  • 지정년월일
  • 문의처041-668-6624
  • 소재지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1길 119-29

상세정보

간월도 물때표 보러가기


시선이 머무른 풍경,
바닷길을 열고 닫는 곳..

“저녁 노을 빛이 바다까지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간월암은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면 심이 되고, 빠져나가면 다시 뭍이 되는 신기한 곳이예요.
이곳은 조선태조 이성계의 왕사 무학대사가 창건, 송만공 대사가 중건했다고 알려집니다.
바다와 어우러져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는 간월암 앞마당에는 200년 된 사철나무가 있습니다. 구불구불한 수피에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은 고즈넉한 나무아래에서 잠시 쉬어가는 건 어떠세요?"

소재지 : 부석면 간월도1길 119-29
문의 : 041-660-2499(문화관광과)

옛이야기 : 예산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에 해산을 앞둔 한 여인이 살았어요.
사난한 형편으로 서산 장에서 어리굴젓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그녀는 어느 날 장으로 나가던 중, 인지면 목장 근처에서 갑자기 산통을 느겼답니다. 할수없이 근처 숲에서 아기를 낳게 된 여인은 갓 태어난 아기를 나뭇잎으로 잘 덮어놓고 서산장으로 나갔습니다. 어리굴젓 장사를 마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서둘러 숲에 돌아온 여인은 아기 근처에 있던 학 한 마리를 발견했어요.
학이 아기를 해칠까봐 여인이 얼른 아기에게 뛰어가는 순간, 학은 ‘무학~’이라 소리내어 울며 하늘높이 날아갔답니다. 다행히 아기는 무사했고, 여인은 곧, 학이 자기 깃털로 아기를 따뜻하게 품어준 사실을 알게되었어요.
아기를 돌봐준 학이 너무 고마워 아기 이름을 ‘무학’이락 지었습니다.
훗날 이 아기는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와 한양을 도읍으로 정했던 무학대사가 되었답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의 무학대사 활동기간으로 미루어보아, 간월암이 600여 년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무학대사가 수도 중에 ‘달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간월암(看月庵)이라 불리운답니다.
수도를 마친 무학대사가 떠나기전 앞마당에 떡갈나무를 꽂아두며 “이 나무가 죽으면 내가 죽은 줄 알라”고 말했다는데, 이에 대해 어떤 이는 본인이 어렸을 때 그 나무가 살아있는 것을 보았고, 때문에 나무가 죽은 것이 얼마 안됐다는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서산 제3경 - 간월암

이번엔 신비로운 암자, 서산 제3경 간월암으로 안내합니다.

바닷물이 빠지는 간조가 되면 육지와 연결되지만
바닷물이 들어오는 만조가 되면 외로운 섬이 되는 암자
그래서 만조가 되면 이 간월암은 바닷물에 홀로 떠있는 것처럼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바다와 자연이 허락해야만 들어갈수 있는 간월암은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천수만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신비로운 암자에서의 낙조와 바닷바람 여러분도 즐겨보세요

답사기

서산여행 답사기아름다운 바다 위의 암자, 간월암

아름다운 바다 위의 암자, 간월암

차창을 열어 바닷바람을 맞았다. 차 안은 이미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으로 가득했다.
차 안에서 먼저 바다를 느낄 수 있어 무척 설렜다. 바람은 얼른 오라며 내 몸을 칭칭 휘감은 후 이내 되돌아 나갔다.


휴일이라서 그런 지 주차장은 빼곡했고,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많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따가운 햇빛에 눈이 찌푸려졌지만, 눈앞에 보이는 풍경 덕에 얼굴은 이내 밝아졌다.
아름다운 뒷태를 열심히 뽐내는 간월암이었다.



시간을 잘 맞춰온 듯 했다. 아직 물길이 열려 간월암에 갈 수 있었다.

간월암은 밀물일 때 육지, 썰물일 때 섬이되는 보기 드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 가야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밀물일 때에는 나룻배를 운행해 건너가곤 했는데 사고가 많아 운행을 중단했다고 한다.



가지각색의 얼굴을 하고 있는 장승들과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돌탑을 지나 간월암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염원이 담긴 기도를 드리고, 추억 한 장 남기려 사진찍기에 바빴다.


고려 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던 도중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이름도 간월도라 했다. 이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 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간월암은 관음전과 산신각, 요사채로 이루어져 있다.
관음전에는 용이 되어 의상대사와 부석사를 지켰다는 선묘와 흡사한 형태의 불화가 모셔져 있는데, 바다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무사귀환의 염원이 담겨진 그림이라고 한다.


바다 위의 낙조로 유명한 간월암. 다른 일정에 의해 낙조를 볼 수는 없었지만, 낙조가 아니어도 간월암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누군가의 염원을 이루어 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깊어져 가는 간월암을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바닷바람을 맞으며 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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